Korea Seen Through My Eyes

by Elizabeth E. Colford, Ph.D
Franz Brandner’s artworks are rooted in the flow of Europe in the last century. Looking at his works, on the one hand, the audience feels the power of a quiet but lively life, which would have been difficult during the late Impressionist period. Rather, the solid, pure nature that seeps out of the sculptures of the rock or the delicate buds of the azalea may allow his paintings to exist.

Of course, the purity of nature is the source of the artist’s work. There are no portraits or self-portraits here. I must give you a note that the nature we see in the works must be accepted only in its own way, and the solid, living nature cannot be regarded as the form we have. For example, “Provence (2014)” in the work, the tranquil emotions covered with trees along the tranquil river and the dense trees like soldiers in blue uniforms suddenly confront us in shock when we look closely at the environment spreading from left to right. Perhaps this scene doesn’t seem peaceful after we invade their private space.

The rocks remind me of Cezanne. It’s because of the square, huge gray without red that appears many times in his works. And still, they are not painted for our enjoyment. However, it can be seen as a strong support point for trees that are dark, twisted, and live their lives hanging from that gray rock at the foot of the mountain. In works such as Mountainside, you can see their power through the wide lines of the brush.

Trees, the most widely used symbol that proves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heaven and earth in art and literature, are a living theme in Franz Brandner’s works. Some trees offer white shining “Spring Blossoms” and call out Monet, who painted outside the door for the first time. But Franz Brander’s trees are not delicate beings. It’s not a sweet poetic expression that stimulates sensitivity, and they’re witnesses of the passage. The autumn trees in the work Forest erupt the cool smell of wet leaves that pass by by passers-by, leave no fiery red and sunlight-lit yellow leaves, and leave the rebellious leaves of the autumn afternoon.
Like Robert Frost, an American poet who appealed to anxious trees in various ways to convey sad poetic conclusions, says, “The trees in Franz Brandner’s works make us remember the difficulties of the life of a decent honest person as personal experiences and think of the obligation to endure.” I don’t even know if he tells the viewer what Frost said about the purpose of poetry through his work. “The moment’s patience against chaos.”

One of the last things we looked at was that works make us not think only of the hardships of our lives. Brandner also expresses hope for a more pure and happy world by expressing other creatures like birds. In his work, Foundation Day, he prepares for a new life by spreading his wings to fly a pair of cranes at first glance. Or is it coming down a ray of light from a white palace in heaven? They remind me more of the Orient than Western paintings. It’s because I drew white birds in the work, as I did with the trees, referring to the inseparable and interactive relationship between the soul and the physical entity.

Naturally, the works of artist Franz Frandner stimulate the response with a message of positive and firm purpose by leaving evidence of the physical and spiritual exchange felt in nature’s purity as well as the subject and technique used in his works.

프란츠 브란드너의 예술작품들은 지난 세기의 유럽의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한편으로는 관객이 후기 인상파의 시기에는 있기 어려웠을, 조용하지만 활기찬 삶의 힘을 느끼게 됩니다. 도리어, 바위의 조각들이나 진달래의 섬세한 꽃 봉오리들에서 스며나오는 견고하고 순수한 자연이 그의 그림들을 존재하게끔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자연의 순수함은 예술가의 작업의 원천입니다. 인물화나 자화상은 여기에는 없습니다. 주의 하나를 드려야만 하겠는데, 우리가 작품들 속에서 엿보는 자연은 그것의 고유한 방법으로만 받아들여져야 하고, 굳건하고 살아있는 본질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보고 싶은 모습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작품 중 “프로방스(2014년 작)”을 예를 들면, 평온한 강을 따라 나무로 뒤덮인 고요한 감정들, 푸른 군복을 입은 군인들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환경을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면 갑자기 충격적으로 우리가 대립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장면은 우리가 그들의 사적인 공간을 침해한 후에는 평화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바위들을 보니 세잔(Cezanne)을 생각납니다. 그의 작품들에서 여러 차례 나타나는 붉은색 없는 네모나고 거대한 회색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은 우리의 즐거움을 위해 색이 칠해지는 것이 아니고요. 다만 어둡고, 뒤틀렸으며 산기슭에 있는 그 회색 바위에 매달려 삶을 살고 있는 나무들을 위한 튼튼한 지지점이라 볼 수 있습니다. “산중턱(Mountainside)” 등의 작품에서 붓의 넓은 선들을 통해 그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술과 문학에서 하늘과 땅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증명하는 가장 폭넓게 사용되는 기호인 나무들은 브란드너의 여러 작품에서 살아있는 주제입니다. 어떤 나무들은 하얗게 빛나는 “봄 꽃들(Spring Blossoms)”을 바치기도 하고, 처음으로 문 바깥에서 그림을 그린 모네(Monet)를 불러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브란드너의 나무들은 섬세한 존재들이 아닙니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달콤한 시적 표현도 아니고 그들은 시간의 흐름의 증인입니다.
작품 ”숲(Forest)”에 보이는 가을 나무들은 행인들이 밟고 지나간 젖은 나뭇잎들의 시원한 냄새를 분출하고, 불꽃같은 빨강과 햇빛에 빛나는 노란 나뭇잎들을 남기지 않고, 가을 오후의 반항하는 나뭇잎들을 남깁니다. 구슬픈 시적 결론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불안한 나무들에 대해 호소했던 미국의 시인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말처럼, 브란드너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나무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품격 있는 진솔한 사람의 삶의 어려움을 개인적인 경험으로서 기억하게 하고, 참아내야 하는 의무를 생각하게 합니다. 프로스트가 시의 목적에 대해 말한 것을 브란드너는 그의 작품을 통해 보는 이에게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란에 대항하는 순간의 견딤”이라고.

마지막으로 살펴본 것 중에 하나는 작품들은 우리가 지금의 삶에서 고단함만을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브란드너는 또한 새처럼 다른 생물들들 표현함으로 더 순수하고 행복한 세계에 대한 희망을 드러냅니다. 그의 작품인 “기반의 날(Foundation Day)”에서는 언뜻 보기에 한 쌍의 학이 날아오르기 위해 날개를 쭉 펴는 것으로 새로운 삶을 준비합니다. 혹은 저 멀리 천국에 있는 흰색 궁전에서 한줄기 빛을 따라 지금 내려오고 있는 것일까요? 서양의 그림들보다 동양의 그것들이 더 생각나게 합니다. 작품 안에서 나무들에게 대했듯 흰 새들을 그려서 영혼과 물리적인 실체의 불가분하고 상호적인 관계에 대해 언급하여 그렇습니다.

당연하게도, 예술가인 프란츠 프란드너의 작품들은 주제와 그의 작품들에서 사용하는 기교 뿐만 아니라 자연의 순수함에서 느껴지는 물리적 영적 교류를 증거로 남김으로서 적극적이고 확고한 목적이 담긴 메시지로 반응을 자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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